품 안 가득 졸업을 축하하는 선물이며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만나 교류를 해오던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찾아와 축하의 말과 선물을 건네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엔 졸업에 대한 기쁨도, 기대도, 아쉬움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래, 그저 허망했다.
“코난- 사진 찍자!”
졸업이라는 특별한 날에 들뜬 아이들이 홀로 동떨어져 있던 소년의 주위로 왁자지껄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의 뒤를 란과 소노코가 카메라를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아이참, 코난. 좀 웃어.”
“그래요, 웃어요. 졸업이라 서운한 마음이 들 순 있겠지만,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더 즐거울 테니까요. 너무 그렇게 서운해하지 말고 웃어요.”
“그래그래. 그리고 졸업식 끝나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구! 어때? 좀 기운 나지?”
즐거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어쩔 수 없이 따라 웃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카메라 너머의 란이 사진을 찍겠다며 손짓하고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어느 날. 에도가와 코난의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카이른 전력 120분 ‘졸업’ [코키드]
“졸업 축하해, 명탐정.”
검은 조직은 와해되었다. 그것은 벌써 몇 년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APTX 4869의 완전한 해독제는 만들어내지 못했고, 여러 차례 걸친 불완전한 해독제의 테스트로 내성이 생겨버리기까지 했다. 쿠도 신이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지도 몇 년째다.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쿠도 신이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만큼 충실하게 에도가와 코난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코난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무척 컸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속에서 도움을 주고 힘이 되어 준 사람들은 많았다. 그들은 쿠도 신이치를 잊지 않을 것이고, 에도가와 코난의 곁을 함께 해 줄 것이다. 코난은 그런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여어, 왔냐?”
그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까지 해독제에 관한 정보를 찾아 도움을 주었다. 빚을 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코난에게 진 빚이 있기에 서로 비긴 셈 치기로 했다. 몇 년 전 종적을 감춘 세계적인 괴도를 쫓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는 괴도가 아니었다. 무엇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딱히 묻지 않았다. 언제고 자연스레 스스로 밝혀오겠거니 싶었다.
붉은 장미가 가득한 커다란 꽃다발이 품에 안겨졌다. 기껏 받았던 꽃다발들을 아가사 박사님께 거의 떠넘기다시피 부탁해서 빈손이 되었었는데, 말짱 도루묵이다. 코난은 질색하는 얼굴로 키드를 바라보았다.
“용케 이런 걸 가지고 다녔네.”
“졸업식이잖아. 다들 가지고 다니니 눈에 띌 일이 없어.”
“하하.. 그럴 리가.”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다.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든 멀끔하게 잘생긴 남자의 모습은 모두의 시선을 끌 만했다. 본인만 그걸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능청떠는 것일지도 몰랐다. 저 모습이 본래의 모습인지, 변장한 모습인지 알 길 없었다. 어떻게 보면 쿠도 신이치와 제법 닮은 얼굴을 하고서는, 꽤 오래전부터 코난을 만나러 왔었다. 아마 본래의 모습이겠지, 생각하며 코난은 질색했던 자신을 보고 곤란해하며 다시 꽃다발을 가져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쿠도 신이치였다면 아마 비슷한 연령대일 것이다. 어른이 되어있었을 자신의 모습을 잠시 그리워하며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키드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꽃다발은 싫어? 졸업식엔 꽃이잖아.”
“배경의 벚꽃만으로도 충분해.”
바람에 떨어져 내리는 벚꽃 잎을 잠시 눈으로 쫓던 키드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까다롭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미 잔뜩 받았다고.”
“다른 사람들 건 받아줘도 내건 안 받아 주는 거야? 매정해~”
“...내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장난스럽게 우는 시늉을 해 보이는 키드의 모습에 코난은 다시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남자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뺏어 들었다. 징그러운 자식.
“키킥, 아냐. 꽃다발 말고 이거 받아줘.”
키드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동시에 퐁,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나더니 손에 들린 꽃다발이 사라졌다. 대신 고급스럽게 생긴 주먹만 한 케이스가 손에 들려 있었다. 뭔가 싶어 손안의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며 키드를 바라보자 씨익,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졸업 선물.”
꽃다발만으로도 족한데 뭘 이런 걸 다 주냐 싶었다. 케이스의 크기로 볼 땐 아마도 시계이겠거니 추측하며 열어보자 정말 손목시계가 들어 있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은 단정한 모양의 손목시계였다. 제법 가격이 나갈법한 선물을 보며 코난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부담스럽다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과 별개로 왜 이런 걸 자신에게 주는 것인가 싶었다.
녀석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이기에?
“이런 걸 내가 받아도 괜찮은 거야?”
“명탐정이니까 주는 거야.”
“하아?”
“명탐정이니까.”
그런 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냐.
코난이 어이없어하며 하하 웃자 케이스에서 시계를 빼낸 키드가 손을 뻗었다. 손을 달라는 듯한 제스처였기에 코난은 왼손을 내밀어 주었다. 검은 조직을 쫓을 때까지는 마취총이 내장된 시계가 채워져 있었지만, 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빈 손목이었다. 더는 모리 탐정을 대신해 추리할 일이 없어졌기에, 힘없는 작은 아이에서 훌쩍 더 자랐기에 마취총 시계가 필요 없어 더는 차고 다니지 않았다.
키드는 비어있는 코난의 손목에 반짝거리는 손목시계를 채워주었다. 시계가 닿은 곳이 차가웠지만, 금세 제 체온에 데워졌다. 손목에 맞춰 끈을 조절해 채운 키드가 시간까지 확인하고는 손을 떼어냈다. 시계의 묵직함이 어색해 괜스레 손목을 만지작거리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으며 슬쩍 키드를 바라보았다.
“졸업 선물.. 고마워.”
“받아줘서 나야말로 고마워. 아, 참.”
쑥스럽게 전한 감사의 인사에 따라 답하며 웃던 키드가 잊고 있던 것이라도 떠올린 마냥 손뼉을 치더니 코난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지도 몰랐던 안경을 잡아 벗겨냈다.
“신이치, 졸업 축하해.”
“..뭐...”
“드디어 고교생 탐정에서 벗어났네. 앞으로도 탐정으로서의 활약 기대하고 있어요.”
“..........”
멈춰있던 쿠도 신이치의 시간이 순식간에 훌쩍 흐른 기분이었다. 코난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키드를 바라보다가 하, 짧게 숨을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시계를 선물 받으며 느꼈었던 묘한 기분의 정체를 그제야 알아차렸다. 키드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녀석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눈앞의 남자는 이제 코난에게 그저 괴도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알게 모르게 함께하며 둘의 관계는 탐정과 괴도 이상의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에도가와 코난이 성인이 되기까지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더 남아있지만, 당장엔 학생 신분을 벗어났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코난은 어리둥절해 하며 얼굴을 덮은 제 손을 쿡쿡 찌르는 키드의 멱살을 잡았다. “어어?” 당황해하는 그의 멱살을 끌어와 얼굴을 바짝 맞붙였다. 아슬아슬하게 입술이 닿기 직전, 키드가 얼른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이건.. 진도가 빠른 게 아닐까, 명탐정?”
“바보냐. 이건 빠른 게 아니라 속 터질 만큼 느린 거지.”
“내가 말한 건 다른 의미로 빠르단 거였지만.. 이제 졸업했다고 막 나가려는 거야?”
“아직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키스로 막 나간다는 말 듣기에는 억울한걸. 진짜 막 나가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줘?”
“..아니요, 참아주세요.”
고개를 내저으며 뒷걸음질 치는 키드를 보며 코난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손 떼.”
잡고 있던 멱살을 놓으며 말하고 이리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이자 이번에는 키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코난이 곧 쯧, 혀를 차자 얼른 한걸음 다가왔다.
하여간 한 번 말로 해선 안 듣는 녀석.
엉거주춤 다가오는 키드의 목덜미를 손으로 감싸며 바짝 입술을 맞붙였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정말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졸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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