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ck or Treat."
카이토는 눈을 꿈뻑이며 하얀 천을 뒤집어 쓴 채 앞을 막아선 이를 바라보았다. 천에 가려졌지만, 훤칠하게 큰 키며 덩치는 딱히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뭐하냐?"
이런 장난을 할 녀석이 아닌데, 뭔가 꿍꿍이라도 있는 것인가 싶어 가만 생각하며 뒤집어 쓰고 있는 천을 잡아 당겼다. 하지만 벗겨질새라 얼른 카이토의 손을 밀어내며 조금 흘러내린 천을 다시 원상복귀 시킨다. 허어, 카이토는 헛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Trick or Treat."
"뭐야, 그 말 밖에 할 줄 모르냐?"
장난다운 장난을 칠 수는 있겠나, 생각하며 카이토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 무리가 이미 몇 차례 휩쓸고 지나간 터였다. 남은 것이라고는 비닐 포장이 된 싸구려 레몬 사탕 하나 뿐이었다. 이것이라도 받겠느냐는 시선으로 손에 들고 흔들자 눈앞의 유령이-아마도 유령일 것이다. 하얀 천을 뒤집어 쓴 것으로 할로윈 분장을 끝낸 것이냐고 비웃어 주고 싶을만큼 허접한 유령이다.-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로는 부족해."
"하, 과자가 얻고 싶었다면 일찍 오지 그랬어."
"Trick or-"
"아아, 이게 부족하다 싶으면 장난 치던가."
네가 장난을 쳐봤자, 뭘 얼마나 치겠냐. 카이토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카이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집어 쓰고 있는 하얀 천의 한쪽을 들어올려 카이토에로 뒤집어 씌웠다. 펄럭이며 떨어져내리는 하얀 천에 갇힌 꼴이 된 카이토가 다시금 눈을 꿈뻑이며 함께 천을 뒤집어 쓴 모양새가 된 사구루를 올려다 보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투덜거리려다가 시야 가득 들어온 사구루의 얼굴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풋, 웃음을 터트렸다.
"꼴이 그게 뭐야."
"과자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어."
안 봐도 비디오다. 카이토를 거쳐간 아이들 무리가 사구루도 거쳐간 것이겠지. 그 중에는 사구루의 열혈팬인 여학생 무리도 있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터다. 카이토는 새빨간 립스틱이 발린 사구루의 입술을 바라보다가 이어서 뺨에 찍힌 붉은색의 입술 모양을 손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감히 어떤 녀석들이 이래 논거야?"
아무리 막나간다고 해도 다짜고짜 뺨에 뽀뽀해? 그보다 이 자식은 왜 피하지 않고 이런 자국을 남겨 놓은거야.
불만스러운 손길로 뺨에 찍힌 입술 모양의 립스틱을 문질러 닦았지만, 쉽사리 닦이지 않았다. 오히려 붉게 번져서는 카이토의 손이며 사구루의 뺨을 더럽히고 있었다.
"나카모리 씨와 코이즈미 씨가."
"아아."
납득해 버렸다. 다른 여학생이었다면 사구루의 얼굴에 손도 못 대었을 테니까. 제 손에 묻은 붉은색을 닦아내려 문지르다가 이내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수해도 안 씻길거 같은데. 그래가지고 집까지 갈 수 있겠어?"
하쿠바 사구루가 말이야. 뒷말은 삼켜내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자 사구루는 걱정없다는 듯이 웃었다.
"이대로 유령이 되어 갈 테니 괜찮아. 어차피 할로윈이잖아."
"켁, 이걸 뒤집어 쓰고 가겠다고?"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걸."
"그건 그렇다만..."
"나보다는 네 걱정을 하는게 어떨까?"
"나? 난 왜?"
사구루가 정말 모르겠냐는 얼굴로 영문 몰라하는 카이토를 바라보았다.
"왜? 뭐 문제 있어?"
"곧 문제가 생길거야."
좀 알아듣게 말할 것이지. 카이토가 찡그린 시선으로 올려다보자 사구루가 턱을 가볍게 쥐어왔다. 뭔가 싶어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턱을 쥐지 않은 다른쪽 손을 움직여 카이토의 입술을 가볍게 터치했다. 아니, 손에 쥔 뭔가로 입술을 문질렀다.
뭔가 싶어 눈을 꿈뻑이며 바라보고 있자니 진지한 얼굴의 사구루가 카이토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달콤한 향이 나는 것이 입술에 발리고 있었다. 당장의 상황을 뒤늦게 인식한 카이토는 그것이 립스틱임을 한박자 느리게 알아차렸다.
"뭐, 뭐 하는거야!"
얼른 사구루의 손을 밀어냈지만, 이미 늦었다.
"당한만큼 누군가에게 갚아주라며 주고 갔거든."
새빨간 립스틱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사구루가 웃었다. 이 자식이...
"야! 그렇다고 그걸 나한테 하면 어떡해!"
"장난 치라며."
장난을 쳐봤자 얼마나 치겠냐고 생각했던 몇 분 전 자신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싶은 심정이었다.
"쪼잔하게 사탕 하나로 만족 못해서 이런 장난을 치냐."
"딱히 사탕 하나로 부족해서가 아니야. 네게 장난을 치고 싶었던 것 뿐이지."
"-아, 그러셔."
"잘 어울리네. 예뻐."
붉게 칠해진 입술을 톡 건드리며 사구루가 웃었다. 자신의 몰골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 카이토가 잔뜩 인상을 쓰며 입술을 문지르려 손을 들어올렸다가 멈칫했다. 잘못 문질렀다가는 지워지기는 커녕 번지기만 할 것이다.
"진짜, 이 꼴로 어떻게 돌아다니라고."
"지금 정도면 볼만한거지."
"하? 이게?"
불만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자 사구루가 답지않게 장난스레 웃었다.
"진짜 못 볼 꼴로 만들어 줘?"
"-뭐?"
사구루의 양손이 뺨을 감싸왔다. 순간 드는 불길함에 카이토가 주춤 뒷걸음질 쳤지만, 미처 피할 틈없이 빠르게 다가온 입술이 포개어졌다. 달콤한 향이 입가에 맴돌았다. 순간적으로 언제나처럼 입술을 열던 카이토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사구루의 어깨를 잡아 밀어냈다. 하지만 뺨을 감싸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놓질 않아서, 입술을 떼어내는 일에는 실패하고야 말았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술 사이로 달뜬 숨이 오고갔다. 벌어진 입술이 맞닿은 채 비비다가 쪼옥, 질척한 소리를 내며 빨아들이고 그 사이를 침범한 혀가 서로의 입안을 거침없이 훑어냈다. 천 안의 갇힌 공기로 호흡하기 힘들어진 것을 느낄 때까지 입술을 맞대어 비비던 둘은 가쁘게 숨을 내쉬며 겨우 떨어졌다.
"...야...이... 망할 자식아...!"
가쁜 호흡에 머리가 멍해져있던 카이토가 사구루의 얼굴을 보자마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서는 사구루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생각지 못한 공격에 사구루가 걷어차인 곳을 손으로 감싸며 몸을 움츠렸다.
"아, 진짜! 생각이란 걸 좀 하고...!"
몸을 움츠린 채인 사구루의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소리를 참으며 웃는 것이란 것을 알아차린 카이토가 들썩이는 어깨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지금 웃음이 나오냐? 나와?"
"아, 미안해."
"미아안? 미안해? 이거 어쩔거야. 이러고 어떻게 돌아 다니라고!"
엉망진창 립스틱으로 붉게 번진 입가를 가리키며 카이토가 버럭 소리질렀다. 몸을 움츠리고 있던 사구루가 고개를 들어 그런 카이토를 바라보더니 이번엔 참지 못한 듯 소리내어 웃었다.
이... 얄미운 자식.
"아, 오늘은 일찍 들어가기로 해서 말이야. 먼저 가볼게."
"..뭐?"
사구루는 망설임없이 카이토의 어깨를 가볍게 밀어 천 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반쯤 흘러내린 천을 잘 갈무리하고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 내일 봐."
"...야.. 야, 잠깐만!"
서둘러 팔로 얼굴을 가린 카이토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성큼성큼 등을 돌려 걸어가는 사구루의 뒤를 쫓았다. 저 천이라도 뺏아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따라가 천을 잡아 당겼지만, 이 정도의 일은 예상한 듯 사구루 역시 천을 쥔 채 놓지않고 있었다. 게다가 답지않게 걸음도 빨라서 카이토는 거의 뛰다시피 뒤를 따라가며 임시방편 삼아 천으로 입가를 가렸다.
"야, 이, 치사한 자식아."
"하하."
"웃기냐? 웃겨? 웃지마! 그리고 좀 천천히 가. 야!"
"부탁치고는 너무 거친데."
"아, 진짜. 알았으니까, 나도 좀 같이 가."
하얀 천을 뒤집어 쓴 사구루의 뒤에 찰싹 달라붙어 이동하며 카이토가 내도록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에 눈치를 살피며 냉큼 천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이게 더 모양새가 이상하다며 사구루가 카이토를 밀어냈지만, 허리에 팔을 감아 찰거머리마냥 달라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너 진짜... 두고 봐."
어쩔 수 없다는 듯 더는 밀어내지 않는 사구루에게 철썩 붙은채로 엉거주춤 이동하며 카이토가 이를 갈았다. 그래그래, 건성으로 대꾸하며 사구루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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