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른 전력 120분 '예고장' [로봇 카이토x쿠로바 카이토]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카이토는 끊임없이 도착하는 메시지 알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내용을 확인했다.
[아카코가 대뜸 누구냐고 내게 물었어. 혹시 알아차린 거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아오코가 학교 마치고 디저트 먹으러 가재.]
[난 못 먹으니까 안 되겠지? 내일 가자고 할게.]
[카이토, 아직 아파?]
[오늘 체육 뜀틀 시험 최고점 받았어! 잘했지? 칭찬해 줘.]
[카이토랑 놀고 싶어.]
[아카코가 계속 무섭게 쳐다봐. 왜지?]
[수업 얌전히 들었어. 카이토, 칭찬해 줘.]
[집으로 바로 갈게. 먹고 싶은 거 있어?]
[카이토, 아카코가 무서워.]
[아카코가 계속 쫓아와. 어쩌지?]
[도망쳤어! 잘했지?]
몇 개의 메시지에는 답을 했었지만, 미처 확인이 늦어 답을 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카이토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 빠르게 답을 했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서 얼른 와.]
[응. 이제 곧 집이야!]
그리고 그만큼 빠르게 도착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곧 집이라고 했으니 말대로 곧 도착하겠지. 아카코는 잘 떼어내고 오면 좋겠는데. 그보다...
메시지 중간중간 보이던 말들이 신경 쓰였다. 역시 아무리 재설정을 하고 또 해도 이미 그가 가진 마음을 삭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과 놀고 싶어 하고, 칭찬을 바라고, 무서움을 느끼는 로봇을 카이토는 어떻게 대해야 할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겨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설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로봇인 그는 집에서 얌전히 카이토를 기다리는 일상을 불만 없이 견뎌냈지만, 과연 그것도 언제까지 일지 카이토는 알 수 없었다.
오늘처럼 자신을 대신해 하루 학교를 나갔던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껴 버린다면? 다시 자신을 죽이려 들지 않을까? 폭발로 파괴되었던 그가 어떻게 다시 말짱히 카이토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제게로 찾아올 생각을 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 머물게만 해 달라던 로봇을 그대로 내쫓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로봇은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서 나쁜 짓이라도 했다간 자신이 곤란해지기에 카이토는 제 시야 닿는 곳에 둘 생각으로 머물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로봇은 카이토의 말에 고분고분히 따르며 지금껏 얌전히 지내왔다. 정말 카이토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로봇이 밖으로 나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더니 정말 아주 사소한 일까지 메시지를 보내는 통에 휴대폰에 불이 날 지경인 것만 빼면 아마도 로봇은 카이토의 행세를 잘 했던 듯했다. 칭찬을 바라고 있으니 잘 했다고 말이라도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카이토는 현관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기다리던 문이 열리고 로봇이 들어왔다.
“다녀왔어!”
“어서 와. 고생했어.”
간단히 인사를 건네며 이리 오란 듯 손을 까딱이자 로봇이 쪼르르 앞으로 달려왔다. 그런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으며 카이토는 웃었다.
“별일 없었지?”
“응, 카이토에게 이야기 한 일 말고 별다른 일은 없었어.”
“잘했어, 잘했어.”
로봇의 표정이 환해졌다.
마음을 가진 로봇.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표정으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로봇. 고작 잘했다는 자신의 칭찬 한마디에 기뻐하는 로봇.
“카이토 너무 좋아.”
그리고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로봇.
이전엔 분명 자신을 죽이지 못해 안달 나 있었는데 아마 폭발로 어딘가 고장 난 것이 분명하다. 카이토는 자신을 와락 끌어안고 볼을 맞대 비벼대는 로봇을 밀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숙제는 없었어?”
“없었어. 카이토 아픈 건 괜찮아?”
카이토가 대답도 하기 전 이마에 손을 댄 로봇은 눈을 깜빡였다.
“열 많이 내렸네. 밥도 먹고 약도 먹었어?”
“먹었어.”
“그럼 오늘은 일찍 푹 자. 내일부터 다시 카이토가 학교랑 갈 거지?”
“응, 그럴 거야.”
“그럼 이따 일까지 내가 해둘 테니까, 푹 쉬어.”
“이따 일?”
여전히 바짝 붙어있는 로봇의 얼굴을 밀어냈다. 이따 일이라니,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자 로봇이 활짝 웃었다.
“빅주얼 소식이 잡혀서 내가 예고장을 보내놨어.”
그리고 칭찬을 바라는 시선으로 카이토를 바라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를 밀어내고 냉큼 리모컨을 집어 TV를 켜자 뉴스 속보가 한창이었다. 괴도 키드의, 예고장. 다행스럽게도 예고 날은 딱히 언제라고 콕 집어놓지 않았다. 카이토가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로봇을 돌아보았다.
“-야! 그쪽 일까지 맡긴 거 아니거든!”
“오늘 하루는 쿠로바 카이토로 있어 달랬잖아.”
“거기에 키드 일이 포함된 건 아니었어.”
“어차피 카이토가 키드니까 그 일도 당연히 카이토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래서 내가 해 주려는 건데.”
“안 돼. 그쪽 일은 손도 대지마.”
허리에 손을 얹고 화가 난 목소리로 단호히 말하자 귀를 축 늘어뜨린 강아지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로봇주제에, 저런 표정이라니.
“카이토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걸.”
“이미 충분히 도움 됐어. 이 이상은 안 돼.”
“카이토...”
화를 내야 하는 걸까, 달래야 하는 걸까. 카이토는 복잡 미묘한 얼굴로 로봇을 바라보다 다시 손을 뻗어 머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오늘 하루 너무 고마워. 키드 일은 조만간 내가 할 테니까, 오늘은 그만 쉬자.”
결국은 달래는 것을 선택했다. 저렇게 시무룩해 져 있는데 화를 내봤자 로봇도, 카이토 자신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 너무도 뻔했다. 딱히 로봇이 기분 상해한다거나, 토라진다거나 하는 등의 일은 없었지만 카이토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그래, 신경이 쓰인다. 사람이 아닌 감정을 가진 로봇이 말이다.
“카이토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럴게. 카이토, 그럼...”
달래듯 건넨 자신의 말에 시무룩한 것은 풀어졌지만, 로봇은 이번엔 우물쭈물 손가락을 가만두질 못 하고 꼼지락거리며 카이토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로봇은 주머니에서 웬 카드를 꺼내 조심스럽게 카이토의 손에 쥐여주었다.
뭐지, 이건?
“예고장이야. 카이토는 뭔가 훔치기 전에 예고장을 보내니까.”
“..예고장?”
무슨 예고장인가 싶어 카드를 돌리니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글씨체로 뭔가가 적혀 있었다.
- 오늘 밤 카이토를 부숴버리러 갑니다♡
“안 돼!”
무슨 얼토당토않은 예고야, 이게. 게다가 하트까지 붙이고.
카이토가 예고장이라며 쥐여준 카드를 로봇에게로 던졌다. 그러자 당황한 로봇이 바닥에 떨어지는 카드를 바라보다 다른 카드를 카이토의 손에 얼른 쥐여주었다.
- 오늘 밤 카이토의 순결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카이토가 카드를 쫙쫙 찢어버렸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생각보다도 손이 빨랐다. 갈기갈기 찢어져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지는 카드의 잔해를 보며 로봇이 허겁지겁 또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카이토는 제 앞으로 내밀어진 카드를 노려보며 방금 찢어버린 카드의 내용과 그 전에 로봇에게로 던졌던 카드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자식, 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온 거 아냐? 와이파이 연결이 자유로워 인터넷 서치까지 자유자재로 해대는 로봇의 능력을 떠올리며 대체 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상한 것을 접하고 이러는 것인지 카이토는 생각해보려 했다.
“카이토..”
대체 예고장이라며 만들어 둔 저 쓸데없는 카드가 얼마나 더 남아있는 것인가. 카이토는 내밀어진 카드와 함께 로봇의 교복 주머니를 뒤져 남은 카드들까지 몽땅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카드의 내용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정말이지 별별 쓸데없는 작업 멘트부터 시작해서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까지 여기저기 잔뜩 적힌 카드들을 하나하나 바닥에 내던지던 카이토는 그중 한 장만을 남긴 채 모두 바닥에 버렸다.
밀어낸다고 밀릴 녀석도 아니고, 녀석과 싸워서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적당히 맞춰주며 구슬리는 게 최고일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이다. 차마 카드 내용 중 일부인 엉덩이를 내어 달라는 예고까지 받아 줄 생각 따위 없기에 카이토는 그중 가장 만만한 것을 뽑아 들어 흔들었다.
“이 예고만 받아주지.”
바닥에 내버려 진 카드들을 우울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로봇이 얼른 고개를 들어 카이토의 손에 들린 카드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양팔을 뻗어 다짜고짜 카이토를 와락 안았다. 카이토가 질색하는 얼굴로 로봇을 밀어냈다.
“그렇다고 얌전히 훔치게 둔다곤 안 했어.”
“응응, 알았어. 카이토 너무 좋아.”
난 너 이렇게 막무가내로 엉겨 붙을 땐 너무 싫다.
카이토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마저 로봇을 밀어내며 들고 있던 카드도 마저 바닥에 내던졌다.
- 오늘 밤 카이토의 입술을 훔치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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