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6. 22:23

 

 

 

 

 

카이른 전력 120분 '안경'

 

 

 

 

 

 

 

 

 

 

 

 

뭐야, 그건?”

 

어쩐지 복도에서부터 여학생들이 소란스럽더라니. 못마땅한 시선을 마주한 눈이 빙긋이 웃음 짓는다.

 

어때? 어울려?”

 

어울리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쓰고 있는 얇은 테의 동그란 안경을 어색하게 매만지며 사구루가 조금 기대감 어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너무 잘 어울려서 여학생들이 난리가 난 걸 모르는 걸까. 카이토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을 한 채로 입을 삐죽였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이 너무 잘난 터라 차마 부정하지는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새삼 다시 반할 정도로?”

! 너 뭐 잘못 먹었냐?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자 사구루의 얼굴이 아쉽게 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보다 갑자기 웬 안경이야?”

 

시력이 나쁜 편도 아니고, 변장할 일도 없으면서 안경이라니. 정말 뜬금없다고 생각하고 있자니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어깨에 팔을 올리며 기대어 왔다.

 

내가 잠깐 빌려줬어.”

 

누군지는 몰라도 참 잘했네. 어색하게 안경을 올려 쓰는 사구루를 보며 생각하다가 제 물음에 대답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떠올리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이, 너도 안경 안 쓰잖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가지고 있지도 않은 건 아니야.”

 

자신만큼이나 안경을 쓴 사구루의 얼굴이 마음에 든 듯 호호 웃는 아카코를 바라보며 카이토가 눈가를 찡그렸다. 이럴 만큼 친하지도 않은데 어딜. 어깨 위의 팔을 밀어냈다.

 

그런데 빌려주는 기간이 조금 더 길어지게 생겼네.”

? 무슨 말이야?”

방금 하쿠바가 나와의 내기에서 졌거든. 불편하겠지만, 안경은 일주일 동안이야.”

잊지 않았습니다. 잠깐만 빌릴 생각이었는데, 아쉽군요.”

어머, 일주일로 늘어서 난 좋은 걸.”

 

아카코가 사구루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 작게 혀를 차며 턱을 쥔 손을 잡아 내린 카이토가 사구루를 가볍게 흘겨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시선으로 묻는 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답은 않고 그저 웃어 보이기만 할 뿐이라 속이 터지는 것은 카이토였다. 안경 하나 추가됐을 뿐인데 잘생긴 미모가 더 돋보이다니, 이건 사기다. 일주일 동안 저러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홀리고 다닐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자신일 게 너무도 뻔했다. 그런 사달이 나기 전에 저 안경을 뺏어야 할 텐데.

 

, 일주일이야. 방해하면 안 돼.”

 

카이토의 생각을 읽은 듯 짧게 웃은 아카코가 선수를 치며 말했다.

 

, 뉘에 뉘에. 맘대로들 해라.”

일주일 동안 안경은 잘 쓰고 돌려줄 테니 걱정 마세요.”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진짜. 둘이 아주 죽이 척척 잘 맞네.

카이토가 입을 삐죽이며 혼자 투덜거렸다.

 

 

 

 

예쁜 애인이 더 예뻐지는 것은 좋다. 다만 주위의 시선을 너무 끌어들이는 것이 못마땅했고, 가벼운 접촉을 하기에 불편해진 것이 영 거슬렸다.

가령 가벼운 입맞춤을 하려다가 안경에 얼굴이 가로막히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얼굴이 닿은 탓에 더러워진 안경의 렌즈를 손으로 문질러 더 더럽히던 카이토가 작게 혀를 찼다. 그리고 닦는 것을 관두고 그대로 안경을 잡아 벗겨냈다.

 

용케도 계속 쓰고 다니네. 안 불편해?”

이제 많이 익숙해졌어.”

하긴 벌써 3일 째니까.”

 

벗겨낸 안경을 그대로 책상에 올려두고 다시 고개를 기울여 사구루에게 입을 맞췄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으니 이렇게나 편한 것을. 이대로 모르는 척 안경을 깔고 앉아 부술까. 그런 못된 생각을 하며 쪽쪽, 맞닿은 입술을 비비면서 사구루의 다리 위로 올라앉았다. 허리에 감기는 손길이 간지러워 작게 몸을 비틀면서도 입술을 떼어내지 않았다. 좀 더, 부족한 기분에 사구루의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기울이자 허리에서부터 등을 타고 올라오던 손이 카이토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만. 아직 학교잖아.”

! 어차피 다들 집에 갔잖아.”

아직 남아있는 애들도 있어.”

진짜 치사하게.”

 

사구루가 하교를 하지 않아서 남아있는 애들도 일부 있을 테지만, 본인은 모르고 있을 게 뻔했다. 뒷덜미가 아직 잡힌 채였기에 키스고 뭐고 더는 못 하는 상태여서 카이토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거리며 올라탔던 몸에서 내려왔다. 책상 위에 고이 올려뒀던 안경을 집어 지저분해진 렌즈에 호오, 입김을 불어넣고 교복 셔츠로 닦아내고 사구루에게 눈짓하자 익숙하게 고개를 기울여 준다.

 

셔츠로 그렇게 막 닦으면 렌즈 상해.”

뭐 어때. 안경닦이 꺼내는 것도 귀찮잖아.”

 

빌린 안경이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인지 사구루의 말에 투덜투덜 대꾸하며 안경을 씌워주었다.

~ 누구 애인인지 참 잘났네.

홀로 삐뚜룸한 생각을 하며 입술을 찾아 고개를 숙이다가 조금 전 그만하라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입술 대신 기껏 닦아낸 렌즈에 쪽, 가볍게 입술을 대었다가 떨어졌다. 반듯하던 사구루의 눈썹이 찌그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킬킬 즐거운 웃음을 터트렸다.

 

덩달아 나까지 불편해졌지만, . 며칠만 더 참아준다.”

그것 참 고마운 걸.”

그렇지. 잔뜩 고마워하라고.”

 

안경닦이를 꺼내 렌즈를 닦아내는 사구루의 가방과 제 가방까지 함께 챙겨든 카이토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쓸데없는 내기를 해서, 쓸데없이 져서는, 쓸데없는 것을 하고 다니는데도 이렇게 맞춰서 어울려주니 고마워할 만하지 않은가. 덩달아 자신이 쓸데없는 질투까지 해주고 있으니, 더욱 더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안경이 뭐라고, 쓸데없이 전보다도 더 사람을 홀리고 다니냐.

교실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학생들의 시선이 사구루의 얼굴에 꽂히는 것을 보며 카이토의 얼굴이 더 못마땅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아쉽지 않겠어?”

- 퍽이나. 얼른 회수해 가라.”

난 좀 아쉬운데.”

그럼 네가 끼던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네가 한 번 써보는 건 어때?”

내가 왜 그런 귀찮은 걸.”

하쿠바가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순간적으로 귀가 솔깃해졌다. 사구루만큼 주위 사람들을 홀리고 다니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사구루 한 명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뚱한 얼굴로 아카코를 바라보자 사구루가 쓴 것과는 다른 안경을 손에 들고 흔들어 보인다.

 

어때? 내기할까?”

? 무슨 내기.”

안경 쓴 네 모습을 보고 하쿠바가 새삼 반했다고 말 할지 안 할지.”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싶어진 카이토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거 하쿠바랑 했던 내기랑 같은 거 아냐? 그런 거에 그 녀석이 넘어갈 리가.”

넘어갈지도 모르잖아? 반했단 말이 없으면 내가 이기는 거야.”

벌칙으로 내가 안경을 쓰고? 그럼 반대로 내가 이기면?”

 

손에 쥔 안경으로 자신의 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아카코가 웃었다.

 

그럼 내가 쓰는 거지.”

, 좋아.”

 

아카코의 내기를 수락하며 손을 내밀자 안경이 얹어졌다. 변장용으로 종종 사용하던 것 중 하나가 안경이었다. 카이토는 익숙하게 안경을 쓰고는 웃었다.

인상을 흐릿하게 만들기엔 안경이 딱이지! 아니, 잠깐만. 반하게 만들려면 튀어야지, 흐려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것보다 이 내기 이겨야 하는 거야, 져야 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터지듯 흘러나오는 생각에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자 아카코가 옆에서 작게 웃음을 흘렸다. 뭔가 요상하게 휘둘리는 기분이다.

 

여기 안경 돌려드리죠.”

잘 어울렸는데, 아쉽네.”

많이 아쉬워하신다면 다음에 또 한 번 써보죠.”

그래준다면 다들 좋아할 거야.”

 

어느새 다가온 사구루가 아카코에게 안경을 건넸다. 안경을 주고받는 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자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놀란 듯 하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음기를 머금는 눈길에 머쓱해져서 괜히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 나도 잠깐, 한 번 써본 것뿐이야.”

잘 어울려.”

, 그래?”

. 새삼 다시 반할 정도로.”

 

, 새삼스레 이 자식이 은근슬쩍 말로 사람을 녹인다는 것을 깜빡했다.

홧홧해지는 얼굴을 감추려 안경을 벗고는 마른세수를 하자 옆에 있던 아카코가 자연스레 손을 내밀어 왔다.

그제야 내기의 내용이 떠올라서.

이렇게 될 걸 아카코는 빤히 알고 있으면서 내기를 제안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라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국은 마녀의 손안에서 놀아난 꼴이다.

내민 손 위에 안경을 올려주자 아카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안경을 썼다.

 

내기는 내기니까, 어쩔 수 없지.”

“... 쓰고 싶으면 그냥 쓰고 다닐 것이지.”

어머,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어차피 듣고 싶었던 말 들어서 좋았잖아?”

, !”

 

 

다 안다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웃는 아카코를 흘겨보다가 어차피 응한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내기라면, 전에 내가 했던 것과 같은 거야?”

 

아카코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구루가 재미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기울여 시선을 맞춰왔다. 아니라고 대꾸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돌리자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중에 안경을 쓴 아카코와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학생들 무리가 시야에 들어와서 돌렸던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대체 안경이 뭐라고 이렇게 놀아나냐

Posted by RIMØ(리모)
2019. 4. 1. 22:25

 

카이른 전력 120분 '배달 음식'

 

 

 

 

 

 잠에서 깼다. 정확히 말하면 배가 고파서 절로 눈이 떠진 것에 가까웠다. 피곤함에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문지르며 휴대폰을 찾아 머리맡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정작 휴대폰은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새벽 늦게 들어와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뻗어버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역시나 새벽 늦게 돌아온 사구루가 씻으러 간 사이에 말이다.

 

 “하쿠바.”

 

 카이토는 눈을 번쩍 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로에 눈 밑이 거뭇한 사구루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잘나신 얼굴이 이게 뭐람. 손을 뻗어 눈가를 더듬거리자 감겨있던 눈이 약하게 떨리다가 뜨였다.

 

 “..쿠로바.”

 

 피로로 잔뜩 갈라진 목소리. 몇 시간 자기는 했지만, 역시 부족했겠지. 자신도 그다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며 몸을 움직여 퍼석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잘 잤어?”

 “..좀 더 자고 싶은데.”

 “나 배고파. 뭐라도 먹고 더 자자.”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로 절실했다. 하지만 꼬르륵, 요란하게 울리는 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좀 더 자겠다는 듯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사구루의 어깨를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나 혼자 먹어?”

 “..십 분만 더 잘 테니까, 이따 같이 먹어.”

 “집에 먹을 거 없으니까 배달시킬 건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없어?”

 “..딱히.”

 “그럼 치킨 시킨다.”

 

 감긴 눈가가 가볍게 찡그려졌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난 지금 네가 더 맘에 안 든다, 이 놈아.

 속내를 굳이 드러내지 않으며 카이토는 조금 양보하기로 했다.

 

 “그럼 피자.”

 “..........”

 “분식류는 어때?”

 “..........”

 “...야.”

 

 잠을 자는 건 아닐 테다. 찡그린 미간이 좀처럼 펴지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저 카이토가 입에 올린 메뉴들이 맘에 들지 않아 그런 것일 테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카이토가 인상을 팍 썼다.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하쿠바 사구루의 까다로운 입맛.

 나름 카이토를 신경 써 준 탓에 메뉴를 가리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가끔 예민하거나 피곤한 날에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은 입에 넣을 생각도 않았다. 불행하게도 하필 오늘이 그런 날이었나 보다. 잠이 깰 정도의 허기를 느꼈던 터라 짜증이 났던 카이토가 사구루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배달 음식 책자를 찾아 꺼내들고는 여전히 꼼짝 않고 누워있는 사구루의 어깨를 재차 툭툭 두드렸다.

 

 “맘에 드는 걸로 골라서 주문 해 놔. 씻고 나올 테니까.”

 “..........”

 “진짜 배고프다고. 주문 안 해 두면 나 혼자 나갈 거야.”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못하단 듯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어 드는 사구루를 홀기며 카이토는 욕실로 향했다. 씻을 기력은 없지만, 자기 전에 씻지 못해 찝찝함이 남은 상태였기에 대충 물칠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잠도 깬다면 더 좋고. 맛있는 것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사구루와 낮잠을 즐겨도 좋을 거다. 카이토는 재차 꼬르르륵 울리는 배를 문지르며 얼른 몸을 씻어냈다. 사구루가 과연 어떤 맛있는 것을 주문해 놓았을까. 몸의 물기를 닦아내며 방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걸터앉아 피곤한 얼굴을 쓸어내는 사구루가 보였다. 설마 아직 음식 주문도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찡그린 얼굴로 다가가자 고개를 든 사구루와 시선이 마주쳤다. 뻗어온 손이 부드럽게 허리에 감겼다.

 

 “뭐 시켰어?”

 “적당한 것으로. 금방 올 거야. 그보다 모닝 키스해 주지 않겠어?”

 “적당한 게 뭐야.”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숙였다. 마른 입술 위로 몇 차례 입술을 떨어뜨리자 그제야 사구루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끌어당기는 대로 사구루의 품 안으로 끌려가 안기자 얼굴 여기저기에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카이토 역시 고개를 돌려 잠이 묻어나는 하얀 얼굴에 입술을 대어 비볐다. 쪽쪽 젖은 소리를 내며 점점 아래로 내려가던 입술에 목덜미를 몇 차례 물렸을 때였다. 현관 쪽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거실까지의 거리가 있었던 터라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며 카이토는 부스스한 사구루의 머리에 코를 묻었다. 하지만 이어서 현관의 키패드를 조작하는 소리가 들려와 카이토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도 카이토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은 사구루는 꼼짝도 않았다. 달칵, 조용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 잠시만! , 하쿠바!”

 

 살짝 열린 방문 너머 있을 현관을 바라보며 카이토가 사구루의 머리를 밀어냈다. 그제서야 아쉽다는 듯이 사구루가 고개를 들었다.

 

 “도착했나 보네.”

 “? 뭐가?”

 “배달시킨 거.”

 “..뭐?”

 

 보통 배달원은 현관의 벨을 누르지, 노크와 함께 문을 따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사구루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품안의 몸을 놓았다. 그 모습을 불안한 시선으로 좇았다.

 불길하다. 저 자식이 뭔가 사고를 친 것 같은데, 아주 불길하다.

 카이토는 얼른 옷을 걸치고는 사구루를 따라 거실로 나가다가 멈칫 걸음을 멈췄다. 몇몇 사람들이 음식이 담긴 그릇을 부지런히 식탁으로 나르고 있었다. 그 중에는 거의 텅 비다시피 한 냉장고를 채워놓는 사람도 있었다. 카이토는 그들이 하쿠바 저택의 고용인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배달 음식 주문하랬더니 어디에다가 뭘 주문한 거야.

 어이없는 시선을 사구루에게로 옮기자 시선이 마주친 것은 종종 보았던 사구루의 유모였다. 당황한 얼굴 가득 억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유모는 공손하게 맞인사를 한 후 몸을 돌려 고용인들에게로 향했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른 사구루에게로 다가가 옆구리를 찔렀다. “아야.”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을 부리며 옆구리를 감싸 쥔 사구루가 시선을 맞춰왔다.

 

 “이게 무슨 짓이야.”

 

 으득 이를 갈며 소리를 죽여 말하자 오히려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여 보여서 분통이 터지는 것은 카이토였다.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으며 어느새 할 일을 끝마치고 집을 나서는 고용인들과 유모를 배웅했다. 감사 인사를 잊지 않으며 문이 닫힐 때까지 웃음을 유지하던 카이토는 현관문이 닫히고 자동으로 잠길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삐삑,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사구루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요령 있게 그 손길을 피한 사구루가 오히려 카이토의 어깨를 끌어안고는 식탁으로 이끌었다.

 

 “너어-!”

 “그래그래, 알았어. 일단 좀 먹고 이야기하자.”

 “뭘 먹고 이야기하재. 내가 배달 음식 시키랬지, 누가 너희 집에다 밥해 달라고 전화하랬냐!”

 “다른 건 먹고 싶지 않았어. 너 배고프면 더 사나워지니 일단 먹고 이야기해.”

 “! 사납긴 누가...!!”

 

 카이토가 버럭 화를 내기 전에 얼른 의자를 빼내어 앉힌 사구루가 피곤한 얼굴로 웃으며 주스를 따라 건넸다. 얼결에 주스를 받아든 카이토는 울화를 삭히려 단숨을 그것을 들이켰다. 따질 건 바로바로 따져야 하는데, 당장 눈앞의 음식들이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배가 부르면 분명 화가 사그라질 텐데.

 

 “여기 치킨이랑, 피자도 있어.”

 

 유모가 우려 둔 홍차를 한 모금 마신 사구루는 카이토가 먹고 싶어 하던 음식들을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 모습을 잠깐 못마땅하게 바라봤지만, 역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밀어준 음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만큼 분명 맛도 있겠지. 하쿠바 저택의 음식은 카이토가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먹고 싶다고 혼자 불쑥 찾아가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처럼 사구루의 전화 한통에 집으로 배달이 되어 온 이 상황이 퍽이나 우습고 당황스러웠다.

 

 “일단 먹긴 먹는데, 진짜 너 이따 두고 봐.”

 “맛있게 먹어.”

 “..잘 먹겠습니다.”

 

 피식 흐르는 웃음을 감추지 않은 채 말하는 사구루를 홀기며 결국 음식으로 손을 뻗었다.

 진짜 저 재수 없는 미친놈이랑 왜 같이 살고 있지.

 내뱉지 못한 불평불만을 카이토는 음식과 함께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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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IMØ(리모)
2019. 1. 20. 16:53





 카이른 전력 120분 ‘잠꼬대’











 귀를 쫑긋 세워야 겨우 들릴 만큼 작게 앓는 소리가 흘렀다. 쿠로바 누이는 두 눈 가득 못마땅한 기색을 띠고 들썩거리는 침대를 바라보았다. 바깥은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지만, 집안은 따뜻하다 못해 더울 지경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불까지 뒤집어쓴 채로 저렇게 꼭 붙어 있는 꼴이라니! 오래간만에 만나서 더 애절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영 꼴 보기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게 서로의 이름을 읊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자 더는 참지 못한 쿠로바 누이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옆에 있던 하쿠바 누이가 당황한 기색으로 잡으려 했지만, 쿠로바 누이의 날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높은 장식장에서 떨어지다시피 뛰어내린 쿠로바 누이는 온몸으로 바닥과 충돌해 몇 차례 통통 튀어 구르고 나서야 몸을 벌떡 일으켰다. 까마득하게 높은 장식장 위에서 하쿠바 누이가 사색이 되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며 침대를 향해 달려갔다. 어차피 솜인형인 것이다. 아플 게 뭐가 있겠는가. 실제로도 아프지 않았으니 된 것 아닌가. 실이 터져 솜이 비져나오는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불 끄트머리가 흘러내린 곳을 찾아 침대 주위를 돌았다. 그사이 침대는 더욱 격하게 들썩이기도 했고, 누구인지 모를 조그만 말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했다. 쿠로바 누이는 저에게 너무도 큰 침대 주위를 달리며 눈꼬리를 올렸다.



 정말이지 꼴 보기 싫은 자식!



 가까스로 이불이 흘러내린 위치를 찾아내서는 힘차게 뜀박질했다. 다른 누이라면 모를까, 자신은 괴도 키드 누이이다. 이 정도는 껌이지, 생각하며 이불에 매달려 빠르게 침대 위로 기어올랐다. 이제 들썩임이 잦아든 침대 위는 생각보다도 조용했다. 쿠로바 누이는 침대의 끝을 향해 달렸다. 이불 속 작은 움직임에 잠시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굴러떨어지는 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머리를 뒤로 한껏 젖혀 위를 올려다보자 밝은색의 동그란 머리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쪽. 쪽쪽. 그리고 아까까지 들리지 않던 민망한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아래에 깔린 삐죽삐죽한 검은 머리가 작게 흔들리며 뭉그러진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쿠로바 누이는 눈가를 찡그리며 냅다 달려가 밝은색의 머리를 걷어찼다. 하지만 그래봤자 솜인형의 발길질이다.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은 듯 상대는 흔들림 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그 모습에 기분이 상한 쿠로바 누이가 이번에는 양팔을 번갈아 가며 머리를 쳐댔다. 그런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기에 씩씩거리며 온 힘을 실어 정수리를 향해 폭신한 발을 날렸다.



 "..아?"



 그제야 쿠로바 누이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고개를 들어 보인다. 붉은빛이 도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떨어져, 이 자식아.



 말을 할 수 없기에 대신 눈에 잔뜩 힘을 준 채로 쏘아보며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파악했는지, 상대는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땀에 젖어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채로 웃는 얼굴이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쿠바 사구루이기에 땀에 젖은 얼굴마저도 잘생겨 보였다.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은 쿠로바 누이는 이번엔 머리가 아닌 뺨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막 몸을 던져 걷어차기 직전에 큼지막한 손에 몸이 잡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시선을 옮기자 여전히 웃는 낯의 사구루가 손가락을 움직여 얼굴을 톡톡 건드려왔다.



 하지 마!



 팔을 움직여 쳐내고자 했지만, 그저 바둥거릴 뿐이라서 쿠로바 누이는 작게 씩씩거렸다. 얼굴을 톡톡 건드리던 사구루는 카이토 누이를 쥔 채 손을 움직였다.



 뭐, 뭐 하려고?



 점차 가까워지는 얼굴에 질색하며 벗어나려고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몸을 쥔 손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어느새 사구루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쿠로바 누이는 동그랗게 눈을 뜬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쪽.

 축축한 입술이 쿠로바 누이의 얼굴 여기저기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뭐하냐?"



 사구루의 아래에 깔려있다시피 한 카이토가 가늘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쿠로바 누이가 다시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몸을 감싼 손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구루의 손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본 것인지 카이토가 손을 뻗어 쿠로바 누이를 낚아챘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지만, 금세 도끼눈이 된 카이토는 팽하니 고개를 돌렸다.



 "이딴 것보다 나한테 좀 더 집중하라고."



 이딴 것이라니!



 쿠로바 누이가 항의하듯 짧은 팔로 제 몸을 감싸 쥔 손을 마구 쳐댔다. 그런 작은 움직임마저도 귀찮다는 듯이 카이토가 가볍게 손을 움직여 쿠로바 누이를 침대 밖으로 던졌다.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쿠로바 누이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하쿠바 누이가 허겁지겁 장식장에서 떨어져 바닥을 구르다가 벌떡 일어나 쿠로바 누이에게로 달려왔다. 그 시간 동안 몸을 일으킬 법도 하건만 쿠로바 누이는 분함에 부르르 몸을 떨기만 할 뿐 그대로 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하쿠바 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일으켜보려 했지만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부들부들 떨 뿐이라 더는 일으키지 못한 채 발만 굴러댔다.



 정말이지, 재수 없는 하쿠바 자시익. 두고 보자. 재수 없는 놈.















 "-라는 꿈을 꿨어."

 "아아, 그래서..."



 사구루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웃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카이토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뭐? 왜?"

 "그런 것보다 화를 낼 상대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누이를 집어던진 건 당신이니까, 분해하며 화를 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지 않나요?"



 말 돌리는 것 좀 보소. 카이토의 눈매가 못마땅함으로 더욱더 가늘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구루는 그저 웃으며 정말 이상하네요, 따위의 말을 할 뿐이었다.



 "이상할 게 뭐가 있냐. 그냥 네가 싫었나 보지."

 "그럼 더 이상하죠. 싫은 상대와 굳이 침대에서-"

 "으아아악! 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꿈인데! 그리고 난 고작 누이였다고! 누이가 싫은 거랑 내가 싫은 거랑 다른가 보지!"



 얼굴이 새빨개진 카이토가 입을 틀어막으려 손을 뻗었지만, 예상했다는 듯이 사구루가 요령 있게 피했다. 그게 더 얄밉다는 걸 스스로가 알아야 할 텐데!



 "그냥 꿈이 그랬단 거지. 진짜 별걸 다 따지려고 그래."

 "꿈이라고 해도 신경 쓰인다고요."

 "궁금하니까 알려달래서 기껏 말해줬더니!"

 "정말 궁금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게 계속 꼴 보기 싫은 자식, 이라거나 재수 없는 하쿠바 자식, 이라고 계속 잠꼬대를 하니까요. 어떤 꿈을 꾼 건가 했죠."

 "...뭐?"



 아무래도 빨갛던 얼굴이 더욱 빨개진 카이토가 어버버 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신경 쓰인다는 사람치고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사구루는 괜찮다는 듯 웃으며 카이토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켰다.



 "꿈 때문에 신경 쓰일지도 모를 테니, 누이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둘까요?"

 "뭐.. 어?"

 "아무래도 계속 생각나지 않겠어요?"



 장식장 위에 가만히 놓여있는, 둘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누이를 집어 드는 것을 눈으로 좇으며 카이토가 벌떡 일어났다. 물론 한 번씩 보이면 신경 쓰이겠지만, 그렇다고 치울 필요까지는 없다. 얼른 사구루의 손에서 누이들을 빼앗다시피 집어 든 카이토가 다시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럴 필요까진 없어."

 "계속 신경 쓰다가 또 그런 꿈을 꿀지도 모르고."

 "아, 됐다니까. 끈질겨, 너."

 "서재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괜찮다고."



 누이를 집어 드는 손에서 다시 뺏어 내려놓으며 작게 실랑이를 벌이던 카이토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사구루의 팔을 툭툭 쳐 장식장에서 밀어냈다. 이렇게 성가셔서야 꿈도 편히 못 꾸겠고, 잠꼬대도 맘 편히 못 하겠다.



 "정말-"

 "아, 네가 계속 이렇게 집요하게 굴어대니 내가 그런 꿈에다가 잠꼬대를 하는 거 아냐. 이럴 거면 앞으로 같이 안 자."

 ".........."



 금세 조용해진 사구루를 흘끗 곁눈질로 바라보자 못마땅함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카이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꼭 싫은 소리 하나씩 덧붙이게 만든다니까. 안 그럴 테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손을 잡아끌자 불만 가득 무겁게 끌려오는 기색에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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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IMØ(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