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6. 22:23

 

 

 

 

 

카이른 전력 120분 '안경'

 

 

 

 

 

 

 

 

 

 

 

 

뭐야, 그건?”

 

어쩐지 복도에서부터 여학생들이 소란스럽더라니. 못마땅한 시선을 마주한 눈이 빙긋이 웃음 짓는다.

 

어때? 어울려?”

 

어울리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쓰고 있는 얇은 테의 동그란 안경을 어색하게 매만지며 사구루가 조금 기대감 어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너무 잘 어울려서 여학생들이 난리가 난 걸 모르는 걸까. 카이토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을 한 채로 입을 삐죽였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이 너무 잘난 터라 차마 부정하지는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새삼 다시 반할 정도로?”

! 너 뭐 잘못 먹었냐?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자 사구루의 얼굴이 아쉽게 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보다 갑자기 웬 안경이야?”

 

시력이 나쁜 편도 아니고, 변장할 일도 없으면서 안경이라니. 정말 뜬금없다고 생각하고 있자니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어깨에 팔을 올리며 기대어 왔다.

 

내가 잠깐 빌려줬어.”

 

누군지는 몰라도 참 잘했네. 어색하게 안경을 올려 쓰는 사구루를 보며 생각하다가 제 물음에 대답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떠올리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이, 너도 안경 안 쓰잖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가지고 있지도 않은 건 아니야.”

 

자신만큼이나 안경을 쓴 사구루의 얼굴이 마음에 든 듯 호호 웃는 아카코를 바라보며 카이토가 눈가를 찡그렸다. 이럴 만큼 친하지도 않은데 어딜. 어깨 위의 팔을 밀어냈다.

 

그런데 빌려주는 기간이 조금 더 길어지게 생겼네.”

? 무슨 말이야?”

방금 하쿠바가 나와의 내기에서 졌거든. 불편하겠지만, 안경은 일주일 동안이야.”

잊지 않았습니다. 잠깐만 빌릴 생각이었는데, 아쉽군요.”

어머, 일주일로 늘어서 난 좋은 걸.”

 

아카코가 사구루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 작게 혀를 차며 턱을 쥔 손을 잡아 내린 카이토가 사구루를 가볍게 흘겨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시선으로 묻는 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답은 않고 그저 웃어 보이기만 할 뿐이라 속이 터지는 것은 카이토였다. 안경 하나 추가됐을 뿐인데 잘생긴 미모가 더 돋보이다니, 이건 사기다. 일주일 동안 저러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홀리고 다닐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자신일 게 너무도 뻔했다. 그런 사달이 나기 전에 저 안경을 뺏어야 할 텐데.

 

, 일주일이야. 방해하면 안 돼.”

 

카이토의 생각을 읽은 듯 짧게 웃은 아카코가 선수를 치며 말했다.

 

, 뉘에 뉘에. 맘대로들 해라.”

일주일 동안 안경은 잘 쓰고 돌려줄 테니 걱정 마세요.”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진짜. 둘이 아주 죽이 척척 잘 맞네.

카이토가 입을 삐죽이며 혼자 투덜거렸다.

 

 

 

 

예쁜 애인이 더 예뻐지는 것은 좋다. 다만 주위의 시선을 너무 끌어들이는 것이 못마땅했고, 가벼운 접촉을 하기에 불편해진 것이 영 거슬렸다.

가령 가벼운 입맞춤을 하려다가 안경에 얼굴이 가로막히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얼굴이 닿은 탓에 더러워진 안경의 렌즈를 손으로 문질러 더 더럽히던 카이토가 작게 혀를 찼다. 그리고 닦는 것을 관두고 그대로 안경을 잡아 벗겨냈다.

 

용케도 계속 쓰고 다니네. 안 불편해?”

이제 많이 익숙해졌어.”

하긴 벌써 3일 째니까.”

 

벗겨낸 안경을 그대로 책상에 올려두고 다시 고개를 기울여 사구루에게 입을 맞췄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으니 이렇게나 편한 것을. 이대로 모르는 척 안경을 깔고 앉아 부술까. 그런 못된 생각을 하며 쪽쪽, 맞닿은 입술을 비비면서 사구루의 다리 위로 올라앉았다. 허리에 감기는 손길이 간지러워 작게 몸을 비틀면서도 입술을 떼어내지 않았다. 좀 더, 부족한 기분에 사구루의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기울이자 허리에서부터 등을 타고 올라오던 손이 카이토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만. 아직 학교잖아.”

! 어차피 다들 집에 갔잖아.”

아직 남아있는 애들도 있어.”

진짜 치사하게.”

 

사구루가 하교를 하지 않아서 남아있는 애들도 일부 있을 테지만, 본인은 모르고 있을 게 뻔했다. 뒷덜미가 아직 잡힌 채였기에 키스고 뭐고 더는 못 하는 상태여서 카이토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거리며 올라탔던 몸에서 내려왔다. 책상 위에 고이 올려뒀던 안경을 집어 지저분해진 렌즈에 호오, 입김을 불어넣고 교복 셔츠로 닦아내고 사구루에게 눈짓하자 익숙하게 고개를 기울여 준다.

 

셔츠로 그렇게 막 닦으면 렌즈 상해.”

뭐 어때. 안경닦이 꺼내는 것도 귀찮잖아.”

 

빌린 안경이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인지 사구루의 말에 투덜투덜 대꾸하며 안경을 씌워주었다.

~ 누구 애인인지 참 잘났네.

홀로 삐뚜룸한 생각을 하며 입술을 찾아 고개를 숙이다가 조금 전 그만하라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입술 대신 기껏 닦아낸 렌즈에 쪽, 가볍게 입술을 대었다가 떨어졌다. 반듯하던 사구루의 눈썹이 찌그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킬킬 즐거운 웃음을 터트렸다.

 

덩달아 나까지 불편해졌지만, . 며칠만 더 참아준다.”

그것 참 고마운 걸.”

그렇지. 잔뜩 고마워하라고.”

 

안경닦이를 꺼내 렌즈를 닦아내는 사구루의 가방과 제 가방까지 함께 챙겨든 카이토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쓸데없는 내기를 해서, 쓸데없이 져서는, 쓸데없는 것을 하고 다니는데도 이렇게 맞춰서 어울려주니 고마워할 만하지 않은가. 덩달아 자신이 쓸데없는 질투까지 해주고 있으니, 더욱 더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안경이 뭐라고, 쓸데없이 전보다도 더 사람을 홀리고 다니냐.

교실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학생들의 시선이 사구루의 얼굴에 꽂히는 것을 보며 카이토의 얼굴이 더 못마땅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아쉽지 않겠어?”

- 퍽이나. 얼른 회수해 가라.”

난 좀 아쉬운데.”

그럼 네가 끼던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네가 한 번 써보는 건 어때?”

내가 왜 그런 귀찮은 걸.”

하쿠바가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순간적으로 귀가 솔깃해졌다. 사구루만큼 주위 사람들을 홀리고 다니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사구루 한 명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뚱한 얼굴로 아카코를 바라보자 사구루가 쓴 것과는 다른 안경을 손에 들고 흔들어 보인다.

 

어때? 내기할까?”

? 무슨 내기.”

안경 쓴 네 모습을 보고 하쿠바가 새삼 반했다고 말 할지 안 할지.”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싶어진 카이토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거 하쿠바랑 했던 내기랑 같은 거 아냐? 그런 거에 그 녀석이 넘어갈 리가.”

넘어갈지도 모르잖아? 반했단 말이 없으면 내가 이기는 거야.”

벌칙으로 내가 안경을 쓰고? 그럼 반대로 내가 이기면?”

 

손에 쥔 안경으로 자신의 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아카코가 웃었다.

 

그럼 내가 쓰는 거지.”

, 좋아.”

 

아카코의 내기를 수락하며 손을 내밀자 안경이 얹어졌다. 변장용으로 종종 사용하던 것 중 하나가 안경이었다. 카이토는 익숙하게 안경을 쓰고는 웃었다.

인상을 흐릿하게 만들기엔 안경이 딱이지! 아니, 잠깐만. 반하게 만들려면 튀어야지, 흐려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것보다 이 내기 이겨야 하는 거야, 져야 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터지듯 흘러나오는 생각에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자 아카코가 옆에서 작게 웃음을 흘렸다. 뭔가 요상하게 휘둘리는 기분이다.

 

여기 안경 돌려드리죠.”

잘 어울렸는데, 아쉽네.”

많이 아쉬워하신다면 다음에 또 한 번 써보죠.”

그래준다면 다들 좋아할 거야.”

 

어느새 다가온 사구루가 아카코에게 안경을 건넸다. 안경을 주고받는 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자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놀란 듯 하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음기를 머금는 눈길에 머쓱해져서 괜히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 나도 잠깐, 한 번 써본 것뿐이야.”

잘 어울려.”

, 그래?”

. 새삼 다시 반할 정도로.”

 

, 새삼스레 이 자식이 은근슬쩍 말로 사람을 녹인다는 것을 깜빡했다.

홧홧해지는 얼굴을 감추려 안경을 벗고는 마른세수를 하자 옆에 있던 아카코가 자연스레 손을 내밀어 왔다.

그제야 내기의 내용이 떠올라서.

이렇게 될 걸 아카코는 빤히 알고 있으면서 내기를 제안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라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국은 마녀의 손안에서 놀아난 꼴이다.

내민 손 위에 안경을 올려주자 아카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안경을 썼다.

 

내기는 내기니까, 어쩔 수 없지.”

“... 쓰고 싶으면 그냥 쓰고 다닐 것이지.”

어머,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어차피 듣고 싶었던 말 들어서 좋았잖아?”

, !”

 

 

다 안다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웃는 아카코를 흘겨보다가 어차피 응한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내기라면, 전에 내가 했던 것과 같은 거야?”

 

아카코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구루가 재미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기울여 시선을 맞춰왔다. 아니라고 대꾸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돌리자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중에 안경을 쓴 아카코와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학생들 무리가 시야에 들어와서 돌렸던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대체 안경이 뭐라고 이렇게 놀아나냐

Posted by RIMØ(리모)